고려시대 대리석제 보살좌상. 높이 92.4㎝. 서울 용산구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원래 강원도 강릉시 남항진동에 있었다고 전하는 한송사 절터에서 발견된 보살상으로, 1912년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되돌려 받았다. 특이하게도 화강암이 아닌 하얀 대리석을 소재로 하여 조성된, 우아하고 온화한 기품을 보여주는 보살상으로 잘려진 머리 부분을 붙일 때의 흔적과 이마 부분의 백호(白毫)가 떨어져 나가면서 입은 손상이 남아 있을 뿐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머리에는 아주 높은 원통형 보관(寶冠)을 쓰고 있고, 관 아래 이마에는 육계(상투처럼 생긴 머리)가 조금씩 나와 있으며 머리카락은 귀 앞으로 양쪽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다. 눈썹 사이에 백호공(白毫孔)이 있으나 백호는 없어졌다. 볼이 통통한 네모난 얼굴에 눈은 절반 정도 떴으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며 3줄로 된 영락(瓔珞, 목걸이)는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에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옷주름이 새겨져 있으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려 발목까지 감싸고 있다. 양손 모두 검지 손가락만 편 채 오른손은 연꽃가지를 잡고 가슴까지 들어 올렸으며, 왼손 역시 검지 손가락을 편 채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발의 자세는 오른쪽 다리를 안으로 하고 왼쪽 다리를 밖으로 두는 좌서상(左舒相)으로, 우서상(右舒相)의 자세를 나타내는 강릉시 오죽헌 박물관 소장 한송사지석불좌상(寒松寺址石佛坐像, 보물 제81호)과 짝을 이룬 것으로 짐작된다.
조금 오른쪽으로 향한 듯한 얼굴과 몸은 통통하며, 조각수법 또한 원숙하고 정교하다. 원통형 보관이나 통통한 얼굴, 입가의 미소 등은 강릉신복사지석불좌상(보물 제84호)과 오대산월정사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이들 불상보다 한층 더 세련된 것으로 조성 시기는 고려 초기(10세기)로 짐작된다. 국보 제12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