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의 라인강 협곡 북쪽 출구 부근에 있는 도시. 인구 30만 4100(1999). 제2차세계대전 후부터 1990년 말까지의 독일연방공화국(서독) 수도였다. 그 전의 옛 시가는 라인강 좌안의 낮은 단구 위에 있었으나, 1969년 남쪽의 바트고데스베르크등 주변 읍면을 병합해서 라인강 양안으로 시역을 확대했다. 전형적인 행정도시이나 시멘트·제약·화학·경금속 등의 공업도 활발하다. 옛시가지에는 13세기의 주교구교회(主敎區敎會), 이곳에서 출생한 L. 베토벤상이 있는 뮌스터광장, 1737년에 건설된 시청사, 그 앞의 마르크트(시장)광장, 베토벤의 생가 등이 있고, 남쪽에 접해서 본대학(라이니셰 프리드리히 빌헬름대학, 옛 쾰른선제후의 성관)이 이어진다. 1949년 서독의 수도가 되자 연방의회·정부기관·대통령관저·총리관저·의원회관 등 연방정부지구가 옛 시역의 남쪽 라인강 좌안에 형성되었다. 또 남서쪽 포펠스도르프에는 바로크양식의 성관이 있고, 식물원과 이과계의 대학시설이 모여 있다. 이 성관에 이르는 큰 거리 포펠스도르퍼알레에 따라서 고급주택이 늘어서 있다. 바트고데스베르크는 13세기의 고성을 중심으로 하는 한적한 주택지이며, DAAD(독일학술교류회)·연방지지연구소 등의 문화관계기관, 각국의 대사관·영사관 등이 많다.
역사
고대로마의 티베리우스황제가 설치한 둔영(屯營)인 본부르크는 민족이동기에 프랑크족에게 점령되었고, 9세기에 노르만인의 공격을 받았다. 921년 황제 하인리히 1세는 이곳에서 프랑스왕 샤를 3세와 평화를 약정했다. 한편, 로마 말기의 순교자묘지에서 성곽이 생기고, 그 바깥쪽 둔영과의 사이에 생긴 시장취락이 도시의 핵이 되었고, 포도주의 거래와 수공업이 번영하였으며, 유대인과 카올인도 정착했다. 12세기 이래 쾰른대주교가 도시 영주(領主)가 되고, 1244년에 시벽을 쌓아서 도시법을 승인하였다. 쾰른선제후령의 행정중심지가 되었고, 중세 말 인구는 약 5000명이었다. 종교개혁을 시행했으나, 17세기에 구교로 복귀, 중립정책으로 삼십년전쟁을 무사히 넘겼다. 프랑스의 원조로 요새성벽을 쌓았기 때문에, 반프랑스세력에게 여러 차례 점령당했다. 프랑스혁명으로 선제후국은 해체되어, 1798년 프랑스령, 1815년 프로이센령이 되었다. 1777년 창립된 본대학은 E.M. 아른트·A.W. 슐레겔·B.G. 니부르 등의 힘으로 해방전쟁(1813∼14)후에 부흥의 정신적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