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科學 science)단어장에 추가

요약
자연 및 사회에서의 사물과 과정의 구조와 성질 등을 조사하여 그 객관적 법칙을 탐구하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활동과 그 소산인 체계적·이론적 지식, 즉 개념·가설·법칙명제·이론의 총체.
설명
자연 및 사회에서의 사물과 과정의 구조와 성질 등을 조사하여 그 객관적 법칙을 탐구하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활동과 그 소산인 체계적·이론적 지식, 즉 개념·가설·법칙명제·이론의 총체. 이것은 세계를 정신적으로 자신의 것으로 하려는 인간의 다양한 인식활동 중에서 가장 중요한 형태이다. 또한 이것은 오늘날 사회적 분업의 특수한 영역으로서 수백만 사람들의 직업이 되는 등,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제도가 되고 있다. 과학은 크게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원래 과학은 인간의 실천적인 사회생활 속에서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왔다. 인간은 자연을 변화시키는 생산활동의 과정에서, 자연과 사회를 대상으로 관찰·실험·조사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지식을 정리·분석·종합해서 개념과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실천에 의해 검증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객관적 법칙을 명확히 세워왔다. 이리하여 그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서 몇 가지 기본법칙에 의거하여 관련된 모든 현상을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체계를 완성해내기에 이르렀다. 즉, 과학은 인간의 실천적 활동에 의해 성립하며, 실천이 제기하는 과제를 이론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발전해 왔으므로, 실천의 다양화와 발전에 따라 끝없이 진보발전을 계속해간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화(differentiation)·특수화(specialization)의 경향과 더불어 널리 몇 개의 분야에 걸친 통합(integration)·보편화(universalization)의 경향으로 생물물리학 및 사이버네틱스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인식활동이 낳은 과학은 보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에 의거하여 개념적·논리적·추상적 사고를 통해 구성된 정식의 체계, 즉 이론이다. 그 특징은 실천을 통해서 검증된 법칙으로 객관적 진리라는 점에 있다. 인간은 과학에 의해 자연과 사회의 법칙을 고의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이 뜻하는 바를 실현시키며,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과학의 방법
과학연구의 방법은 과학혁명기라 할 수 있는 16세기 말∼17세기에 걸쳐 그 기초가 확립되었다. 이 기간 동안 I. 뉴턴에 의해 뉴턴역학이 확립되었으며, 해석기하학(解析幾何學)·미적분학(微積分學) 등이 창시되었다.

실험과 관찰


실험적 방법의 탄생
17세기는 근대과학의 성립·발전에 획기적인 시기가 되었지만, 그 전제가 된 것은 16세기 중반부터 영국을 중심으로 서유럽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생산기술체계였다. 즉, 중세에서 근세에 걸쳐 장인적(匠人的) 전통으로 유지되어 오던 기술이, 공장제수공업기에 근대기술의 선구자로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16세기의 대표적인 과학자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N. 코페르니쿠스, 근대해부학의 시조로서 생물학과 의학의 토대를 이룩한 A. 베살리우스, 신성폭발(新星爆發)을 관측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우주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T. 브라헤, 그리고 W. 길버트·G. 갈릴레이·J. 케플러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1600년에 영국에서 출간된 길버트의 《자석(磁石)에 대해서》는 근대실험법의 시초로 평가된다. 이 책은 나침반을 만드는 기술자와 그것을 이용하는 선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그는 의사였지만 자철광(磁鐵鑛)으로 구(球)를 만들어 그 위에 자침(磁針)을 매달고 실험을 하여, 지구는 자석이다>라고 한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였다. 갈릴레이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사용되고 있던 분쇄기·기중기(起重機) 등 여러 기계에 착안, 그 기능을 고찰하여 《레 메카니케》를 저술하여, <기계는 물체의 운동상태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또한 그는 1583년 진자(振子)의 등시성(等時性)을 발견하고, 1591년 피사의 사탑(斜塔)에서 유명한 <낙체실험(落體實驗)>을 행하였다. 그리고 17세기 초에는 낙하속도가 낙하시간에 비례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증하기 위해 <경사면의 실험>을 하여 가속도의 법칙을 발견했다. 자유낙하는 너무 빨라서 당시의 기술로는 포착해 낼 수 없었으므로, 천천히 낙하시키기 위해 경사면을 이용하였다. 이 실험은 오늘날 실험실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실험의 착안과 발상의 기본이 되었다. 그는 이러한 성과를 《신과학대화(新科學對話, 1638)》에 집약해서 근대역학이 확립되는 길을 열었다. 또한 갈릴레이는 1609년에 배율 30배의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관측을 하고, 목성의 위성(衛星), 달의 요철(凹凸), 태양의 흑점 등을 발견하였다. 케플러도 1609년, 1619년에 화성의 운동에 대한 연구를 통해 행성운동에 관한 법칙을 발표했다. 갈릴레이는 스스로의 관측 결과에 의거, 《천문대화(天文對話, 1632)》에서 지동설을 주장하여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W. 하비는 《동물의 심장 및 혈액의 운동에 관한 해부학적 연구(1628)》를 출간하고, 최초로 혈액이 전신을 순환하는 것을 관찰하여 실험적으로 명백히 하였으며, 생물학, 특히 생리학 분야에 실험적 방법을 부여했다. 17세기 중반 이후에는 새로운 수단으로서 현미경을 사용한 생물학 연구가 시작되어, 1665년 R. 훅이 세포를 발견하고, 1673년 A. 레벤후크가 적혈구를 발견하는 등 근대생물학의 기초가 마련되어 갔다. 이러한 실험적 방법의 성립과, 그와 함께 점차 풍부해진 자연인식의 방법이 같은 시대의 철학자인 F. 베이컨·R. 데카르트 등에 의해 과학방법론, 즉 종합·분석·귀납·연역법으로서 일반화되었다.

실험적 방법의 역할
실험이 과학 연구방법의 기초로서 확립된 것은 17세기였지만, 실험도구 및 장치가 충분히 그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의 결과 공작기계기술이 발달된 이후부터였다. 예컨대 19세기의 T. 영·A.J. 프레넬 등으로 시작되는 광학연구, 특히 19세기 중기 이후 광속도(光速度) 측정에 대한 A.H. 피조의 실험(1849, 51), 마이컬슨-몰리의 실험(1886~87) 등은 기계공작기술의 진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세기에는 열역학(熱力學)과 전자기학(電磁氣學)이 형성되어, 역학과 함께 고전물리학의 3대 분야가 확립되었다. 열역학은 열동력의 이론으로서, 산업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1800년 전지(電池) 발명은 전기시대로 가는 문을 열어, 패러데이-맥스웰의 고전전자기학 체계가 19세기에 확립되었다. 한편 A.L. 라부아지에의 《화학강요(化學綱要, 1789)》로 시작되는 근대화학은, J.J. 베르셀리우스의 《원자량(1814·1826)》, J. 리비히의 《기(基)의 개념(1832)》 등에 의해 19세기에 체계화되었는데, 그 실험수단은 물리학 분야와는 조금 다른 면에서 발전했다. 오래된 실험수단은 연금술 이후의 기술적 전통 및 광산·야금기술과 위스키 제조에 이용되는 증류기술 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화학분야에서 장인적 기술이나 매뉴팩처 생산기술로서 유지·발전되어 갔다. 대혁명 전 프랑스의 특권 제조업체들은 그 기술을 유지하였는데, 그 기술적 전통이 화학자를 낳는 하나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러한 것이 무기화학·유기화학 등의 실험기술의 기초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화학의 고전적 기초는 19세기 초부터 전반기에 걸친 원소분석 실험기술의 발전, 증류·분류(分溜)·재결정화·여과(濾過) 등 화학 고유의 조작, 실험기술의 발전 위에 확립되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생물학에서는 19세기 초부터 실험생리학의 성립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기초를 다진 사람이 C. 베르나르이며 19세기 후반에 L. 파스퇴르·R. 고흐에 의해 미생물학의 길이 열리고, 1880년대에 중요한 병원균이 잇따라 발견되었다. 생물학이 전체적으로 실험적 과학으로서 그 위치를 확립한 것은 1890년경이다.

발견의 의미
실험·관찰에 의한 발견은 과학체계의 형성·전개에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

① 발견이 이론을 검증함으로써 그 이론의 체계를 완성시키는 경우:이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예로 1848년의 해왕성의 발견을 들 수 있다. 뉴턴역학은 《프린키피아(1687)》에 의해 체계적인 기초가 완성되었는데, 그것은 기하학적 표현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다. 그 후 수학해석의 발전에 의거해서 그 해석적 표현을 한 것이 역학적 천문학을 발전시킨 J.L. 라그랑주의 《해석역학(解析力學, 1788)》과 P.S. 플라스의 《천체역학(天體力學, 1799~1825)》이며, 이것에 의해 뉴턴역학을 토대로 하는 역학적 자연관이 확립되었다. 그 상징적 사건이 1846년 J. 애덤스·U.J.J. 르베리에에 의해 각각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해왕성의 존재에 대한 예언이다. 해왕성은 천왕성의 궤도혼란의 관측에서 궤도가 계산되고 그 존재가 예언되어, J.G. 갈레가 그것을 바탕으로 관측·발견하였다. 또 하나의 예로서 1888년 H.R. 헤르츠에 의한 전자파(電磁波)의 존재에 대한 실험적 증명을 들 수가 있다. 헤르츠는 1879년 <전자적인 힘과 전기편극(電氣偏極)과의 관계의 실험적 증명>에 대한 연구를 시작, J. 맥스웰의 변위전류(變位電流)의 실험적 증거를 덧붙여 공중에 전자적인 횡파(橫波)가 존재하는 것을 실증했다. 전자기학은 1856년~1865년 맥스웰의 몇몇 연구논문과 그것을 집대성한 《전기자기론(電氣磁氣論, 1873)》에 의해 장(場)의 이론으로서 체계화되었다. 맥스웰의 최대 공적은 M. 패러데이의 전기학 연구에 수학적 표현을 부여하여 전파(電波)의 존재를 예언한 것이다. 헤르츠의 성공은 전파의 존재에 대한 실험적 증명일 뿐 아니라,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승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헤르츠의 실험은 빛의 본질이 전자파라는 맥스웰의 예언에 한층 더 실체적 근거를 주게 되었으며, 학문체계의 발전에 대한 공헌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검증 이상으로 적극적인 의의를 갖는다.

② 이론의 예측과는 전혀 다른 현상 또는 대상을 발견하는 경우:이 경우의 예로서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을 들 수가 있다. 헤르츠의 실험은 당시 진공 속에서의 전자적 매체로서 에테르의 존재를 실증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은 지구의 에테르에 대한 상대속도의 관측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빛을 어떤 매질(媒質)의 진동으로 간주하고서 그 매질을 처음으로 <에테르>라 명명한 사람은 훅이며, 빛의 파동설을 체계적으로 전개한 최초의 학자는 17세기말 C. 호이겐스였다. 이후 파동전파매체로서의 에테르의 본질이 문제가 되어 19세기에 들어 빛의 파동설은 프레넬 등에 의해 새로운 전개를 보였고, 19세기 후반 맥스웰이 빛의 전자파설(電磁波說)을 제기하여, 그 매체로서의 에테르의 본질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당시의 주류적 견해였던 프레넬의 <수반계수개념(隨伴係數槪念)을 동반한 정지 에테르이론>에 마이컬슨-몰리의 실험은 부정적인 결과를 주었다. 이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학자가 H.A. 로렌츠이며, 그의 <수축가설(收縮假說)>이 마이컬슨-몰리의 실험결과를 설명했다. 이 가설은, A.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출현에 의해 에테르개념을 부정한 형태로 이론적으로 완성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에테르개념을 부정했다기보다는 불필요하다고 보고 소거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에테르 개념은 진공 속에서의 전자기력을 전하는 장(場) 그 자체로서의 에테르개념의 중추개념, 상대성이론, 장의 양자론을 거친 후 물리적 진공의 본질적인 문제로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③ 발견적인(heuristic), 또는 우연적인 발견의 경우:이런 발견의 일례로 E. 러더퍼드 등에 의한 원자구조의 발견이 있다. 러더퍼드는 α선 산란현상(散亂現象)의 연구에서 큰 각도로 산란되는 α입자가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고 원자의 핵구조모델(중심에 단단한 심지를 포함하는 구조)을 알아냈으며 그것으로 산란을 설명했는데, 이것은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발견의 하나이다. 또 진공방전 실험중에 이루어진 W.K. 뢴트겐에 의한 X선 발견은 한층 우연성이 높은 발견이다. 화학에서는 1856년 W.H. 퍼킨이 퀴닌을 합성하려던 도중에 퀴닌은 생기지 않고, 그 대신에 생성된 적갈색의 침전물을 처리해서 아닐린 염료인 모브를 얻은 경우 등을 비슷한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실험과정에 수반되는 현상으로서 일정한 우연성을 갖고 전혀 예기치 않은 사실이나 규칙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연한 발견은 이후에도 계속 일어날 수 있다.

기본 개념과 이론의 구성
과학은 자연과학·사회과학의 구별 없이 모든 분야에서 몇 개의 기본개념을 토대로 그 지식체계가 구성된다.

고전역학의 경우
17세기에 성립한 뉴턴역학은 선행성으로 하여 이후의 모든 자연과학의 틀이 되었다. 뉴턴역학에서의 기본개념은 <공간> <질량> <운동량> <힘>이다. 《프린키피아》에서는 서두에 정의를 서술하고, 제1∼3의 운동법칙이 공리(公理)로서 주어져, 거기에서 모든 이론체계가 연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의 고전역학은 해석역학으로서 매우 정밀한 수학적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물리학으로서의 본질에서 보면 《프린키피아》에 쓰여진 것과 기본적으로 동등한 것이다.

19세기의 여러 과학의 경우
라부아지에·J. 돌턴에서 D.I. 멘델레예프에 이르는 과정에서, 19세기에 성립된 근대화학의 기본개념으로는 <원자> <분자>의 개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열역학은 19세기에 <에너지>의 형태전환과 그 이동에 관계되는 현상의 과학으로서 성립했고,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전자장(電磁場)>의 방정식에 의해서 모두 기술되는 체계로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생물학에서는, 예컨대 <종(種)>의 개념 등을 들 수 있다. 19세기까지 성립한 근대과학에서의 이러한 기초개념, 즉 질량·에너지·장·원자·종 등은 넓은 범위에서는 기본적으로 그대로 현대과학으로 계승되고 있다. 물론, 그 내용파악은 깊어지고, 기본개념·기본량으로서의 이론체계상의 위치는 변화해왔으며, 또 그 변화 속에서야말로 현대과학의 본질이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기본개념의 수량적 표현
물리학·화학 등의 기본개념은 기본량으로서 수량적 표현이 가능한 양이며, 기본적으로 측정가능한 양이다. 수량적으로 표현됨에 따라 정밀과학으로서의 체계적 구성이 한층 보기 쉬운 형태가 되고 가설의 실험적 검증도 한층 보편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정밀과학으로서 사실상의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생물학 등에서는 모든 분야가 측정가능하고 양적 표현이 가능한 개념으로 성립된다는 것은 곤란하며, 종개념의 경우에서처럼 무의미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수량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상대성이론의 경우
19세기의 근대과학에서 20세기의 현대과학으로의 체계적 변혁은 A. 아인슈타인이 제기한 1905년의 특수상대성이론과 1915년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시작되었다. 뉴턴역학에서는 시간·공간은 물질 및 그 운동에 대해 각각 밖에서 부여된 상호 독립적인 고정된 틀로서 존재하는 것으로, 그 의미에서는 <절대시간> <절대공간>이었다. 맥스웰의 전자기학에서도 이 점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장(場)의 방정식에서 기술되는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뉴턴역학을 특징짓는 갈릴레이의 상대성원리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장의 개념> 속에 이미 특수상대성이론으로 계승되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공간은 4차원의 민코프스키시공(時空)이라고 파악되어, 이미 상호 독립이 아니라 물질의 운동을 매개로 결합한다. 사상(事象)의 동시성 인식의 상대성과 광속도불변성(光速度不變性)에서 출발하는 이 이론은 오늘날의 물리적시간·공간인식에 이르는 혁명의 첫걸음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변혁을 더욱 진전시킨다. 즉,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간·공간이 아직 민코프스키시공으로서, 밖에서 부여받은 틀로서 존재하며, 그 기하학이 기본적으로 유클리드성을 유지한 상태인 데 반해,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시공 내에서 어느 기하학이 통용되는 것인가는, 거기에 분포하는 물질의 상태로 결정하게 되었다. 즉, 4차원 시공의 기하학을 결정하는 거리텐서가 중력퍼텐셜이라는 물리량과 연결되게 된 것이다. 철학의 카테고리로서 존재한 시간·공간이 이상의 의미에서 본래적으로 물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질(질량)분포↔중력퍼텐셜↔거리텐서와 같은 형태로, 물질·공간·시간의 본질적 연관이 비로소 물리학의 대상이 된 것이다. 또 특수상대성이론은 에너지와 질량과의 양적 동등성이라는 인식을 가져왔다.

양자역학의 경우
상대성이론이 기본적 카테고리로서의 장의 개념에 의거해서, 시공과 물질과의 상호관계에 대한 인식의 변혁을 추진해 온 데 대해서, 양자역학(1925~1927)은 입자성(粒子性)과 파동성(波動性)이라는 물질의 두 가지 측면을 확률밀도로서의 파동함수 로 표현함으로써, 물질관과 물질의 운동을 규정하는 인과법칙성(因果法則性)의 변혁을 가져왔다. 예컨대 <불확정성 원리>의 문제가 그것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양자역학적 차원에서의 관측량으로서의 물리량에 대한 기본적 조건의 하나를 부여하여, 마이크로 레벨에서의 관측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식견을 줌과 동시에, 양자역학이 거기에서 출발하여 그 인과법칙을 구성하는 원리가 된다. 그리고 이 양자역학이 바로 특수상대성이론과 결합됨에 따라 상대성이론적 양자역학과 장의 양자론이 성립(1928~929)되었다. 여기에서는, 진공은 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공의 물리화에 호응한 형태로 가상적 입자의 생성·소멸이 실행되는 물리적 진공으로 파악되며, 는 공간에 분포하는 장의 연산자(演算子)가 된다. 이렇게 해서 출발한 장의 양자론은, 단수명(短壽命)으로 생성·소멸하는 소립자의 묘상(描像)을 부여하는 이론으로서의 소립자론에서 근간이 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기본적 카테고리로서의 장의 개념 및 에너지와 질량과의 양적 동등성이라는 인식이 그 기초가 되었다. 상대성이론에 의한 시공개념의 근본적 변혁과 양자역학에 의한 물질의 운동법칙 변혁의 결합과정에서, 장의 개념이 공통의 기본카테고리로서 규정적 역할을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화학에서는, 그 중심과제인 화학결합의 본질에 관해 양자역학을 적용하는 것으로(하이틀러-런던의 이론, 1927) 그 해명을 위한 기본원칙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분자·원자·화학결합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여러 개념의 통일적 파악
이상과 같이 보면, 상호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19세기의 뉴턴역학·맥스웰전자기학·열역학·화학 등의 여러 기본개념이 20세기에 들어와서 상호연관에 대한 인식이 한층 깊어져 통일적으로 파악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각각의 개별 과학에서의 실험수단 및 이론수단 등이 더욱 고도화·전문화되고 특수화·분화되어 가므로 개개의 과학자가 모든 과학체계에 대한 통일상(統一像)을 구성하는 것이 곤란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근대과학의 성립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기본개념간의 상호연관이 한층 깊게 통일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가설과 모델, 모델의 역할
연구자는 어떤 사상(事象)을 연구할 때 실험·관찰의 결과를 검토해서 가설(假說;hypothesis)을 세운다. 그리고 거기에서 가능한 모든 명제를 연역하고, 이어서 이 모든 명제의 실천적 검증을 한다. 그 결과가 긍정적이면 가설은 이론으로서 성립하지만, 검증의 결과에 따라 가설의 수정이 필요할 수도 있으며, 결과가 부정적이면 가설은 파기된다. 이 형식의 이론구성을 <가설연역법(hypothetic-deductive method)>이라고 하며, 실제로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 하나의 기본형이 된다. 이 경우 가설과 관련해서 가설 그 자체가 모델로 설정되는 일이 많으며, 연구를 진행해 가는 과정에서 모델의 역할은 크다. <모델적 방법>은 자연과학에서는 상당히 넓게 자유로이 해석되며 여러 차원에서 사용된다.

원자론의 성립·전개와 모델
모델의 가장 기본적인 본연의 모습은 대상계(對象系)의 기본적 구조 및 실체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 되고 있는 경우에 볼 수 있다. 물질의 원자론을 예로 들면, 러더퍼드의 원자모형 등이 있다. 원자론의 경우, J. 돌턴으로 시작된 원자론이, 물리적 리얼리티를 갖는 것으로서 널리 수용되기까지는 거의 1세기의 기간을 필요로 했다고 할 수 있다. 로렌츠가 그 원자론에서 출발해서 원자내 전자를 밝혀낸 것 등도 이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원자든지 전자든지 혹은 핵이든지 그 존재가 물리적 실체로서 확인되는 것이 이론을 결정짓는 전부라고 해야 할 것이며,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탕천수수)]에 의한 중간자의 도입, 윗슨·크릭의 DNA모델 등도 같은 경우이다. 돌턴은 19세기 초 기체의 성질에 대해서 고찰하고 라부아지에의 원소개념과 뉴턴의 역학적 입자관을 토대로 하여, 스스로 제시한 부분압력의 법칙, 화합물에서의 배수비례의 법칙, J.L. 프루스트의 일정성분비의 법칙 등 현상론적 법칙을 기반으로 그 원소에 고유한 질량을 갖는 궁극입자인 <원자>의 개념에 도달해서, 그것을 《화학이론의 신체계(新體系, 1808)》로서 발표했다. 사변적(思辨的)·철학적 원자관으로서는, BC 5∼BC 4세기 데모크리토스 이래의 역사가 있으나, 여기에 처음으로 고유한 질량을 가진 원자를 기본으로 하는 과학적 원자론이 탄생함으로써 근대화학·근대물질관의 기초를 이루었다. 원자론이 그 물리적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역사는 근대화학의 형성사(形成史) 그 자체이며, 원자량 기준이 확정된 것은 1860년 칼스루에 국제회의에서였다. 한편, 물리학에서도 같은 해에 맥스웰의 기체운동론이 발표되었으며, 1866년 당시로서는 상식을 초월한 기체의 점성계수(粘性係系數)에 관한 예언 등이 실증되었고, 또 이론에 의거해서 공기의 분자크기가 대략 10㎝로 산정됨으로써(J. 로슈미트, 1865), 드디어 분자의 실체가 포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F.W. 오스트발트를 비롯한 화학열역학 연구자가 중심이 된 원자론적 관점에 대한 강한 반대가 E. 마흐 등에 의한 철학에서의 실증주의와 결합해서 뿌리깊게 존재하여 19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것은 L. 볼츠만과 F.W. 오스트발트의 <원자론-에너지론 논쟁>을 가져왔다. 과학상의 최종결론은 1908년 현탁입자(懸濁粒子)의 동태를 정밀한 실험으로 조사하여, 그것이 기체운동론에서의 예측과 합치하는 것을 증명한 J.B. 페랭의 실험에 의해 이루어졌다. 돌턴 이후 정확히 1세기가 걸려 원자·분자의 존재가 확실해진 셈이다. 원자론의 역사는 실체적인 모델이 이론체계의 형성에 있어서 행하는 중심적 역할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이다. 러더퍼드모델 역시 실체적 모델의 전형이다. 이것은 20세기 초의 원자구조이론의 구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맥스웰과 헤르츠에 의해 19세기에 완성된 고전전자기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 모형에서는 필연적으로 원자는 전자파를 방사하여 에너지를 잃으므로 안정구조라고는 할수 없게 된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N.H.D. 보어는 1913년 양자조건(量子條件)을 부가해서 반고전적(半古典的) 모델로 수정하여 스펙트럼의 결과를 설명했다. 이 보어모델의 과도적 성격(前期 양자론)을 극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양자역학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러더퍼드모델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차원의 이론체계 속에 포섭·재생되었다.

추상적·극한적 표현으로서의 모델
실체적 모델이 대상계 구조의 주요한 측면·특징을 전체로서 표현할 수 있음에 반해 그 주요 특징의 하나 내지는 일부분만을 빼내어 표현할 수 있는 모델이, 실제로 이론적·실험적 연구를 추진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뉴턴역학에서의 질점(質點) 모델이나 강체개념(剛體槪念), 또 물성이론(物性理論), 열역학에서의 이상기체(理想氣體), 자성이론(磁性理論)에서 스핀계의 격자배열(格子配列)에 대한 이징모델(Ising model) 등은 그 전형이라 볼 수 있다. 크기를 갖지 않고 질량만을 가지며, 어떤 특정한 퍼텐셜로서 상호작용하는 점입자(點粒子)로서의 질점개념은, 질점역학체계로서 뉴턴역학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지금도 이론구성의 초기 단계에서 종종 사용된다. 볼츠만은 1872년 통계역학으로의 출발점이 되는 볼츠만방정식을 도출함에 있어 우선 질점계에서 출발하여 그 결과 충돌항(衝突項)이 보기 쉬운 형태를 취하게 되어 정리(定理) 등의 기본정리를 끌어냈다. 이 방정식은 지금도 비평형이론(非平衡理論)을 구성할 때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뉴턴역학에서의 강체개념은 현실의 물체운동을 취급하는 경우에 실용적인 의미로서 그 유효성을 발휘해 왔다. 이것도 하나의 극한 개념으로서의 모델이다. 어느 한곳에 가해진 작용(外力)의 순간적 전달을 의미하는 강체개념은, 이론으로서의 상대성이론에서는 부정되지만, 마이크로 레벨에서 분자집단으로서의 액체계를 대상으로 하는 물성이론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강체개념은 질점집단에 대한 통계역학을 강체구분자(剛體球分子) 집단으로 확장한 것으로, 그에 따라 현실대상계의 한충 리얼한 표현으로 접근해 가려고 하는 노력의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이론의 진전에 따라 역할을 끝내는 모델
처음에는 실체적·기계적 모델에서 출발하지만, 이론의 진전에 따라 일정한 단계에서 역할을 끝내거나 불필요한 것으로서 소거되는 모델이 있다. M. 패러데이와 맥스웰에 의한 전자장개념의 확립과정에서 그것을 볼 수가 있다. 패러데이는 1831년에 전자유도현상(電磁誘導現象)을 발견하여, 거기에서 전자장개념의 출발점이 된 <자력선(磁力線)> <전기긴장상태>라는 착안을 제기했다. 또한 그 후의 전기화학적 연구(전기분해현상의 연구)를 통해 정전유도(靜電誘導)와 전기분해현상(이것은 전류에 따라 편극한 입자의 연쇄라는 것으로 설명했다)을 비교, 정전유도가 원격작용적(遠隔作用的)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개재(介在)하는 물질의 영향을 통해서 근접작용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패러데이는 전장·자기장의 개념을 <역선(力線)>이라는 구체적 표현으로 명시했는데, 이것은 당시 지배적이었던 뉴턴적 원격작용설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패러데이의 생각을 수학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론화하려고 한 사람이 맥스웰이다. 그는 제1논문 《패러데이의 역선(力線)에 대해서(1856)》에서 역선의 움직임과 비압축성 유체와의 사이에서 유추해낸 것에 의해 전자기장의 기초적 방정식을 추출해내는 데 기초를 제공하였다. 제2논문 《물리학적 역선에 대해서(1861~1862)》에서는, 여러 전자적 현상을 유체역학 모델에 의한 어낼러지로 다루고 있다. 이것은 전자장의 유체역학적 모델이라 해야 할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그는 매질 속에서의 전기적 진동의 전파속도를 계산하여, 그것이 A.H.L. 피조 등이 측정한 광속의 측정값과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고, 빛의 본질에 대한 가설을 제기하였다. 제3논문 《전자장의 동역학적 이론(1865)》에서는, 그때까지의 유체역학적 모델이란 토대를 없애고 전자장의 기초 방정식을 수학적으로 표현하였으며, 거기에서 연역적으로 이론을 구성하여 오늘에 전해지는 전자기학 체계의 기본을 거의 완성시켰다. 맥스웰은 대전(帶電)의 에너지가 전기편극(電氣偏極)의 형태로 매질 속에 모여, 진공의 경우에는 에테르라는 물질적 실체가 유전매질로서 작용한다고 생각했지만 오늘날과 같이 전자장 그 자체를 물리적 실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느 쪽이든, 맥스웰은 그 이론형성 과정에서 전자장의 기본 방정식을 이끌어냈다. 이 모델은 적어도 대상의 주요한 실체적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었는데, 그는 방정식체계를 얻은 뒤에 그것을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이 패러데이와 맥스웰에 의한 고전 전자기학의 형성과정은 모델의 역할, 그 변천, 수학적 표현이 차지하는 역할과 의의에 대한 전형적 사례를 나타내고 있다.

상대성이론·양자역학과 모델
지금까지 살펴본 모델의 대부분은 기계적·구조적 성격을 띤 <실체적 모텔>이라 해야 할 것들로서, 모델에 대해서 논할 경우의 표준이라 해도 좋으며, 고전적인 동시에 비상대론적이고, 직관적 묘상(描像)을 그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체험이 고전 물리학적(비상대론적) 세계와 기본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성이론·양자역학의 등장으로 모델 본연의 상태는 크게 변화했다. 그것은 일상적 생활경험의 범위 밖에서의 마이크로 레벨 및 우주적 레벨의 사상(事象)이 연구대상이 되며, 그 때까지의 직관적 묘상 따위의 말로써는 정확하고 일의적(一義的)으로 대상의 구조 등을 표현할 수 없고 또 고도의 수학적·추상적 표현을 수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자역학에서의 파동성과 입자성의 문제가 소박한 의미에서의 고전적 묘상으로는 이미 성립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일정한 조건(불확정성 관계) 아래에서 파동적 묘상과 입자적 묘상을 사용함으로써 발생하고 있는 물리적 과정의 주요한 특징을 파악할 수는 있다. 그 의미에서 양자역학적 차원에서도 실체적 모델이 사용되어, 연구가 발전되어 오고 있다. 1925∼1926년경, 양자역학의 형성에는 W. 하이젠베르크·M. 보른·P. 요르단에 의한 행렬역학(行列力學)의 과정에 대해서 L.V. 드 브로이·E. 수뢰딩거에 의한 파동일원론적인 과정이 있었다. 이 양자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였지만, 슈뢰딩거가 양자의 동등성을 깨닫고, P.A.M. 디랙이 상태벡터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양자를 하나의 이론으로 통일함으로써 1927년 양자역학의 변환이론이 이루어졌다. 이 경우, 파동일원론적 묘상은 본래 고전적인 파동의 이미지이며,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 뒤 양자역학의 혁명적 본질이 한충 두드러진 형태로 부상했다고 할 수도 있다. 또, 슈뢰딩거방정식에서 의 시간변화는 해밀토니안 에 의해 규정되는데, 를 구성할 때 그속에 포함되는 퍼텐셜 에 대해서 보통 고전적 입자적 묘상으로 이것을 표현하여, 그 후 그것을 양자역학적 연산자로서 취급한다. 대상의 실체적 구조는, 우선 퍼텐셜 의 함수표현으로 반영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양자역학 및 소립자론의 차원에서도 실체적 모델의 역할은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마이크로의 세계에서는 물리량이 의미하는 점이 고전론 단계와 기본적으로 다른 해석을 받고 있어, 상대성이론적·양자역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물론 실제적으로는 고전적 묘상을 머리에 그리면서 상대성이론적·양자역학적으로 대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때 연구에서 실체론적 의미에서의 모델이 수행하는 역할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과학에서의 실체적 모델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논점은, 상대성이론에 의한 우주에 관한 여러 모델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적합하다.

현상론적 모델
모델을 사용하는 연구방법은 과학의 발전단계에 따라 각기 다른 차원에서 사용되지만, 실체적·구조적 성격을 지니는 모델과 대조적으로 현상론적 성격이 강한 모델도 널리 사용된다. 대상이 더욱 고차적이고 복잡해질수록 그와 같은 성격의 모델이 많이 등장하게 된다. 사회과학의 분야에서는 근대경제학에서의 수치표현을 주체로 한 여러 가지 경제모델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것들은 어떤 특정한 사상, 예컨대 물가변동 등을 표현할 때 수치적으로 그 변동곡선에 적합하도록 매개변수를 설정한 것이며, 그 경우 매개변수가 어느 만큼 본질을 반영한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컴퓨터에 의한 계산기술의 진보·용이성의 증대와 함께 이런 종류의 모델이 더욱 빈번히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의미의 수치화는, 추상화·일반화와는 의미가 다르고 대상의 전반적인 표현 그 이상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적어도 그 타당성 등을 처음부터 한정해서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물리 분야에서의 계산기실험은 비교적 단순한 계(系), 예컨대 강체구입자계(剛體球粒子系)나 이징스핀계 등에 대해서 주요 매개변수의 물리적 의미가 확실한 것에 관해 정확한 계산을 하는 것으로, 이론과 실험의 중간에 위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존법칙으로서의 여러 기본법칙(보존성·불변성·대칭성)
여러 과학 분야에서, 그 토대 또는골격으로서의 역할을 행하는 여러 기본적 법칙을 보면, 보존되는 양 또는 질이 무엇인가를 문제로 하는 것일 경우가 많다. 그 전형적 사례가 19세기에 확립된 에너지보존의 법칙이며, 이 법칙은 물리학·화학뿐만 아니라, 전체 자연과학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현대에서도 근사법칙(近似法則)으로서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에너지보존의 법칙이 그 제안 이래 백 수십년간이나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그 올바름이 입증되었다기보다, 오히려 20세기에 상대론·양자역학에 의한 물리학의 혁명을 거쳐, 기본적 카테고리로서의 <에너지> 개념이 철저하게 재조사됨에 따라 이 법칙의 위치와 역할이 이전보다 더 기본적인 것이 되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즉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단지 그 일반성 때문에 보편적 중요성을 지닌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리학·화학 등의 이론 구성을 보면 분명하지만, 그것은 개별 분야의 도처에서 개별적인 방정식으로서 나타난다. 예컨대, 상호작용하는 다립자집단계(多粒子集團系)의 여러 비평형론적 성질, 즉 점성(粘性)·확산(擴散) 등을 도출하는 이론을 생각할 때, 에너지 보존의 조건은 출발점을 이루는 기초 방정식의 하나가 된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 또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에너지의 개념과 그 보존의 의미이다. 이 법칙은 형성과정의 개별적 과정이나 결과를 보더라도 본래 귀납법칙이다. 물론 모든 사상에 대한 경험에서 귀납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장래 이 법칙이 깨져 하나의 근사법칙이 되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사실, 양자역학의 형성·전개과정에서 하나의 사상을 설명하기 위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부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다른 모순을 낳았고, 잘못된 것이라고 밝혀졌다. 그런 경위를 거쳐 이 보존의 법칙은 여러 가지 변화를 통해 불변으로 유지되는 에너지라는 양의 존재를 의미하는 법칙으로서 오늘날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만일 이 의미에서의 불변성이 깨지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때에는 에너지 개념 그 자체의 물리적 의미가 변해버렸다고 생각해야 될 것이다. 보존의 법칙으로서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는 것으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 외에, 운동량·각운동량(角運動量)·전하(電荷) 등의 보존법칙이 있다. 이러한 보존법칙이 법칙의 대칭성의 결과, 즉 수학적으로 말하면, 어떤 변환군(變換群)에 대한 불변성의 결과라는 것이 오늘날 명백해지고 있다. 예컨대 공간적·시간적 변위(變位)에 대한 법칙의 불변성은 운동량·에너지의 보존을 의미하며, 공간에서의 회전에 대한 불변성은 각운동량보존을 의미한다는 것 등이다. 그리고 소립자론의 진전과 함께 새로운 여러 가지 보존법칙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어, 이와 함께 좌우의 대칭성, 입자·반입자대칭성(反粒子對稱性) 등의 대칭성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보존법칙과 대칭성과의 관계, 대칭성 개념의 중요성이 물리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이 되어 온 것은 상대성이론·양자역학의 결과이다. 보존성·불변성·대칭성의 개념은 근대과학의 형성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처음 라부아지에에 의한 원소 개념의 제기에 즈음하여 질량보존의 법칙이 중요한 무기가 된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라부아지에에게 있어서 질량보존의 개념은 그 원소의 체계가 제기됨과 동시에 하나의 규칙으로서 명확한 형태를 취하여 나타났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지금으로서는 근사법칙이며 에너지 보존의 법칙 속에 포함된다. 라부아지에의 원소 개념과 돌턴의 원자론에 의해 근대화학의 출발점이 부여된 후, 1830년 전후부터 유기화학의 형성이 시작된다. 그 기본이 되는 주요 개념은, <기(基)의 불변성(기의 존재)>이라는 것이다. 웰터와 J. 리비히는 벤조산이 관련하는 반응과정에서, 일련의 물질 분자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중에 일관해서 조성을 바꾸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벤조일기(基)>라 명명했다. 유기화합물 분자 속에 그러한 기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 무기 학합물을 원자의 결합·배열의 법칙에 의거해서 체계화하고, 유기화합물의 분자구조 개념의 확립, 유기화학의 체계를 성립하는 길을 열었다(1865). 기의 불변성이라는 문제는 그것과 대항하는 <치환(置換)> 개념의 제기에 의해 그 뒤 유기화학의 논쟁점이 되지만, F.A. 케쿨레에 의한 벤젠핵의 발견·제기에 따라 유기화학 체계의 토대가 완성됨과 동시에, 분자구조 개념이 실체 개념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지금까지 기의 불변성은 중요한 작업가설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연구의 발전에서, 이러한 작업가설을 완성시키는 단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 될 것이다. 유기화학에서의 대칭성의 문제는, 1848년 파스퇴르에 의한 광학이성질체(光學異性質體)의 발견으로 시작되어, 1874년 J.H. 반트호프·J.A. 르벨에 의한 비대칭탄소원자의 발견을 거쳐 비로소 입체화학(立體化學)으로서의 체계적 발전 속에 위치하게 된다. 생물학 분야에서도 불변성(항상성)과 가변성의 양면이, 개방계(開放系)·정상계(定常系)로서의 한 개체 속에서 서로 길항(拮抗)하면서, 생(生)에서 죽음에 이르는 시간적 일방향성(一方向性) 속에 관철·공존한다. 그리고 종(種)으로서의 불변성이 유전자라는 실체 속에 실린 형태로 개체에서 개체로 인계된다. 그 유전자가 핵산의 일종인 DNA라는 것이 1940년대에 거의 분명해지고, 1953년에는 DNA구조가 판명되었으며, 이어서 DNA의 복제메커니즘 및 형질발현기구(形質發現機構)가 해명되었다. 이것은, 형질=분자라는 판단에 입각한 것이며, 그 의미에서 생명의 기본적인 형태를 포착한 것이다. 불변성을 유지하는 실체의 추구라는 방향에서의 1단계가 여기에서 끝난 것이다. 분자생물학의 센트럴 도그마의 정당성이 이 분야에 한해서 확인된 것이다. 한편 가변성으로서의 진화의 문제는 1859년 C.R. 다윈의 진화론 이후, 1900년 H. 드 브리스의 멘델 유전법칙의 재발견, 1901년 돌연변이설, 1910년과 1926년 T.H. 모건의 유전자설의 제기, 1927년 J.H. 멀러의 X선에 의한 유전자의 인위적 변화의 발견 등을 거쳐, 1940년대 이후 진화 연구를 생물학의 전분야를 종합한 체계 위에 놓는 종합설로서의 네오다위니즘(유전학의 발전을 기조로 할 때 네오멘델리즘이라 한다) 등이 주된 조류가 되어 있고, 이에 대해서 돌연변이에 관한 중립설(中立說) 등도 제기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론에서의 수학의 역할
자연과학에서 수학적 표현의 중요성은 《프린키피아》에 표현된 뉴턴역학과, 그 1세기 후의 J.L. 라그랑주의 《해석역학》 그리고 19세기 중엽에 해밀턴-야코비이론이라는 형태로 체계화되어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해석역학을 대비해보면 명확할 것이다. 해석역학은 고전역학으로서 같은 물리적 내용에 관한 것이지만, 변분원리(變分原理)·라그랑주형식·해밀턴형식 등 여러가지 형태로 정식화되어 정준변환(正準變換) 등의 개념을 가져와서 양자역학의 정식화에 도움을 주었다. 오늘날 대상계(對象系)의 슈뢰딩거방정식을 구성할 때, 그 계(系)의 고전적 해밀토니안에 대해서, 그 속의 물리량을 연산자로서 그대로 적용하여 양자역학적 해밀토니안을 구성한다는 절차를 취한다. 이것은 기술한 바와 같은 표현수단의 발전에 따른 것이다. <뉴턴역학에서 해석역학으로>라는 이론 표현의 일반화·추상화가, 이처럼 한층 고도의 유효성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 고도의 수학적 방법이 구사되므로 과학발전의 <특수화>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정확하지는 않다. 내용의 본질은 본래 자연과학의 여러 개별 분야와는 독립적으로 수학자가 제기하고 체계화한 수학의 개념·방법이, 자연과학 체계 속에서 단순한 계산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내용상의 기본적 유효성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의 정식화에서, 파동함수(波動函數)가 복소수(複素數)인 것이 본질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 등은 또 하나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리고 상대성이론에서의 계량텐서의 역할을 생각해 보면, 비(非)유클리드기하학의 미분기하학 표현의 유효성은, 마치 그것이 상대성이론을 위해 만들어진 듯한 인상마저 주지만, 비유클리드기하학은 본래 상대성이론과는 독립적으로 구성된 수학이다. 최근의 사례로 말하면, 어떤 시공점(時空點)에 부여한 작용이 다른 시공점에서의 장의 양에 주는 효과를 표현하는 그린함수 등은, 확실히 광범한 물리현상을 표현하는 데 어울리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오늘날 많이 이용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자연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수학의 유효성을 해명하는 것은 오늘날 과학론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일 것이다.

자연과학과 철학
베이컨·데카르트로 시작되는 과학의 인식론은 17~18세기의 영국 경험론자, 18세기의 프랑스 유물론자, 백과전서파(百科全書派)에 의해 전개되었다. 18세기는 뉴턴역학적 자연관이 지배하는 시대였는데, 뉴턴역학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그 기초를 이룬 학자는 I. 칸트이다(《순수이성비판, 1781》). 18~19세기에 걸쳐, 영국에서는 J. 벤담으로 시작되는 공리주의가 나타나고, 조금 늦게 프랑스에서는 A. 콩트의 실증주의 철학이 형성되었다. 독일에서는 스스로의 손으로 봉건제로부터의 자기해방을 이룰 수 없는 <시민계급>의 철학으로서 칸트 이후 F.G. 피히테·F.W. 셸링·G.W. 헤겔에 이르는 독일관념론의 조류가 생겨났다. 그 철학은 과학적 인식을 <자연철학>이라는 관념론적으로 세워진 변증법적 자연관으로 총괄하는 것이다. 19세기 중기 이후 영국에서는 다윈진화론(1859)이 맬서스주의적인 영향을 주면서도 널리 사회에서의 진보라는 개념을 추진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독일에서는 헤겔좌파에서 P.J.A. 포이어바흐를 거쳐, 마르크스·엥겔스의 변증법적이고 사적(史的)인 유물론에 이르는 길이 열렸다(《독일의 이데올로기, 1845~1846》 《반뒤링론, 1878》 《자연의 변증법, 遺稿》). 또 독일산업혁명의 전개와 함께 자연과학의 다면적인 발전과 마르크스주의의 대두에 자극되어 신칸트파의 조류가 표면화되고, 자연과학 전반의 급속한 진보 속에서 뉴턴역학적 자연관의 지배에 동요가 생겼다. 역학과 함께 고전물리학의 3대 분야를 구성하는 열역학과 전자기학이, 19세기에 당시의 다른 여러 과학에 비해 월등하게 완성도가 높은 형태로 성립한 것은, 한편으로는 그 때까지의 좁은 역학적 자연관을 타파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 에너지일원론 등의 자연관을 대두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에너지의 전환과 이동의 과학으로서의 열역학은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열기관(熱機關)의 과학으로서 성립한 것인데, 그 기초법칙인 제1법칙(에너지 보존의 법칙)·제2법칙(엔트로피법칙)의 표현이 매우 보편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점에서, 양법칙의 역할을 일면적으로 절대화한 에너지일원론(오스트발트), 우주의 <열사설(熱死說;켈빈 등, 제2법칙의 일면적 절대화)> 등의 자연관이 생겨난 것이다. 또, 전자장이론을 형성할 때 맥스웰이 최종적으로 역학적 모델을 배제한 것도, 자연의 객관적 실재성을 부인하는 관점을 지지하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이러한 에너지론적 자연관 등을 철학적으로 감각론적 실증주의로서 체계화하려고 한 학자가 마흐이다. 원자·분자의 존재까지도 일절 불필요한 가설로서 멀리하려는 마흐·오스트발트와, 한편으로 입자상(粒子像)에 입각하는 기체운동론에서 분자의 열운동으로써 제2법칙을 설명하고 통계역학을 창설한 볼츠만과의 사이에 <원자론-에너지론 논쟁>이 일어난 것은 19세기 말의 일이었다. 이것은 물론 볼츠만의 승리로 끝났지만, 그러한 실증주의의 조류는 오늘날에도 존재하며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일종의 니힐리즘으로서의 <열사설>도 역시 제2법칙의 적용방식의 오류이며, 이미 극복된 것이지만, 여전히 그 변형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J.L. 모노의 《우연과 필연》 등의 최대의 문제점도 여기에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의 상대성이론·양자역학의 출현은, 그 이전까지의 자연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들 새로운 이론의 출현에 즈음해서는, 그 대상영역이 일상 경험을 훨씬 초월해서 미소한 방향(소립자), 또는 커다란 방향(우주)으로 확장되어, 이것에 의해 자연적 세계의 자명성이 흔들린 것에 맞게 실증주의적·조작주의적 사고나 불가지론적 경향 등이 반복해서 형태를 바꾸어 나타났다. 양자역학의 기초를 둘러싼 곤란(관측문제 등)으로 인해 다만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양만으로 그 고찰을 한정하려는 실증주의가 오늘날에도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조류는, 과학이 새로운 전개를 보이는 그 전단계에서, 오래된 이론에 대한 어느 정도의 비판적 역할을 이루는 경우는 있지만(예컨대 뉴턴적 <절대시공> 개념의 비판에서의 마흐의 역할), 그 다음에 오는 새로운 이론의 출현에 즈음해서는, 그 반대 것으로 전화(轉化)한다. 볼츠만과 오스트발트 논쟁이 바로 그것이다. 레닌은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속에서 이러한 조류를 <마흐주의>라 명명하고 철저하게 비판하여, 변증법적 유물론과 그 자연과학론을 발전시켰다. 마흐주의는 분석철학의 주류의 근원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19세기말 이후, 신칸트파의 H. 리케르트 등은 과학에 대한 인식비판으로서의 철학의 역할을 강조하고 칸트인식론의 관념론적 요소를 한층 철저히 하여 과학론을 정리하고자 했다. 그리고 1929년 M. 슐리히를 중심으로 한 <마흐협회>, H. 라이헨바흐를 중심으로 한 <베를린학파>의 사람들이 모여 <빈학파>를 형성했다. 그 입장이 <논리실증주의>이며, 이것은 경험주의 내지 실증주의의 전통 아래 B.A.W. 러셀이나 L. 비트겐슈타인 등의 <논리분석>의 방법을 이용하여, 과학이론의 논리적 구조 해명을 목표로 한 것이다. 이것을 계승한 것이 과학언어를 포함하여, 언어의 여러 모습의 분석을 철학의 주요 임무라고 하는 <분석철학>의 조류를 이룬다. 이는 크게 영국의 <일상언어학파(G.E. 무어, 후기 비트겐슈타인, G. 라일 등)>의 흐름과, 미국의 <인공언어학파(R. 카르나프 등)>의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근래 과학이론의 형성·구조·검증(내지 반증)·발전·교대 등을 둘러싸고 이 파(派)의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든 분석철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철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에 대항하는 부르주아지의 철학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자연과학의 동향과 사회
오늘날 발전하고 있는 자연과학의 동향을 들면, 그 첫째는 종래의 학문 분과를 초월한 차원에서의 새로운 종합적·다면적 발전이라는 점일 것이다. 생물물리학·정보과학의 성립, 생화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한 생명과학의 전개나 관측천문학·상대론·소립자론의 종합을 기초로 하는 우주과학의 성립 등은 그 전형적 예라 할 수 있다. 둘째는, 이상과 관련되지만 기술발전을 반영해서 실험·계산설비 및 시스템의 거대화가 전에 없는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립자 관계 실험시설의 거대화, 대형계산기의 발전 등이 그 예이다. 셋째는, 이와 같은 상황이 거액의 자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국가·독점자본 아래에서의 과학자·기술자의 조직화·집단화가 대규모로 진행되어, 제2차세계대전 이후 과학자의 다수가 군사기술과 직접·간접으로 관련되는 경향이 특히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역사상 최대의 사례는 원자폭탄 제조를 목적으로 한 <맨해튼계획>이며, 거기에 투입된 당시의 국가예산은 약 30억 달러라는 거액이었다. 맨해튼계획의 중심이 된 로스알라모스연구소에는 N.H.D. 보어·J. 채드윅·E. 페르미·J.L. 노이만·J.R. 오펜하이머 등 당시 세계의 물리학을 지도하고 있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또한 이들을 도왔던 평균연령 약 30세의 젊은 과학자 중 적어도 6명 이상이 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즉, 그곳에서의 과학자의 조직화 과정은 미국 과학연구체제의 골격을 기본적으로 규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로스알라모스와 그 밖의 연구소는 여전히 다수의 과학자를 확보, 전후(戰後) 원자폭탄·군사연구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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